고난주간의 의미
사순절의 마지막 한 주에 해당하는 고난주간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신 종려주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주일 전까지의 기간 즉, 주일에서부터 토요일까지를 말합니다. 이 기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겪으신 고난을 생각하며 지냅니다.
고난주간 내에는 종려주일, 세족 목요일, 성 금요일, 성 토요일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이었던 이 고난주간에는 예루살렘 입성, 성전 숙청, 감람산 강화, 성만찬 제정,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체포와 심문, 십자가 처형과 장사 등 그야말로 예수 공생애의 절정을 이루는 사건과 전 우주적 사건이기도 했던 대사건들이 숨막히게 전개 되었습니다. 이에 성도들은 주님의 사역의 모든 것이 응축적으로 담겨있는 이 주간의 각 요일마다 그 요일에 있었던 사건들을 기억하며 한 주간을 엄숙한 절기로 보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한 의로운 인간의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워진 구속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구속주가 당하신 전 우주적 고난이었습니다.
태초에 인간은 선악과를 두고 맺은 언약을 어기고 범죄했습니다. 그리하여 원래의 규정대로 죽어 영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절대 거룩한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이 세운 법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단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공의의 원칙대로 처벌하시면서도, 끝없는 사랑으로 죄를 지은 인간에게는 구원 받을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법을 궁극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대속 희생으로서의 고난이셨던 것입니다.
변론의날…예수의 위대한 침묵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신 후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 시위대에 체포되십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급조된 세 차례의 재판을 받으십니다.
첫번째 장소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입니다. 여기서 밤새도록 시달린 예수님은 다음날 해뜨기 전에 또 한번 산헤드린 법정에서 종교적인 약식 재판을 받으십니다. 당시 그들은 사형을 집행할 권한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로마 총독에게 예수님을 이송합니다. 마태복음 27장 11절 이하에서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을 선고합니다. 이 세 차례의 재판은 모두 불법이고 불의한 판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의도된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산헤드린 법정에서는 제사장이 의장이 되고 서기관,바리새인,장로들이 재판관이 됩니다. 대개 다 그렇지만 밤에는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또 특별히 결정적인 증인이 없이는 사형을 선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판에는 이런 것이 한 가지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첫번째 재판에서 거짓 증인들이 많이 나왔으나 막상 증거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유일한 증거는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한 죄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19절에 나타난 이 말씀은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나를 죽일 것이나 삼일 후에 나는 부활하리라”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오해해서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근거로 채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에게까지도 흠잡히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그분을 처형할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62절에서 대제사장은 거짓 증거를 인정하라며 집요하게 질문 공세를 펼칩니다. 이들 앞에 예수님은 오직 침묵하십니다. 변명하거나 논쟁하지 않으십니다. 불의한 일을 접할 때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택해야 할 방법은 예수님의 바로 이 위대한 침묵입니다.
예수님의 침묵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대제사장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말하라”(63절)며 결정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셨던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64절)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 침묵은 변명이요,도망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직설적으로 간결하게 “네가 말한 그대로다”고 대답하십니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왕의 위대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맹세하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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