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queline du Pré - Dvořák Cello Concerto – London Symphony Orchestra cond. Daniel Barenboim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이런 첼로 협주곡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왜 나는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이전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면 나 자신이 첼로 협주곡을 작곡을 하였을 텐데,”라고 브람스는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처음 듣고 감탄하여 탄식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불과 다섯 달 뒤에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브람스는 베토벤을 잇는 최고의 걸작이라는 4개의 교향곡을 비롯해 음악사의 최고봉에 자리 잡고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 유럽 음악계의 독보적 거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왜 첼로 협주곡을 작곡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첼로 협주곡은 이미 오래전 바로크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엔드핀(End Pin)이 장착되기 전의 첼로는 연주하기가 불편해서 고난도의 연주가 불가능했습니다. 엔드핀(End Pin)은 첼로의 밑바닥에 장착된 가느다란 금속 봉(棒)입니다. 길이를 조정할 수 있고 끝에 고무 캡을 씌워 엔드핀이 닿는 바닥의 표면을 보호하고 미끄럼을 방지하도록 되어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이 엔드핀이 첼로에 장착되면서 연주자들의 기량이 빠르게 발전하였고 첼로는 독주 악기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발디, 하이든, 보케리니 등이 작곡한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첼로 협주곡이 19세기 이전에는 거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높은 음역을 가진 바이올린과 달리 첼로는 음역이 낮아서 독주 상태가 아니면 소리가 관현악에 묻히기 쉽습니다. 독주 첼로가 낮은 음역을 연주할 때는 관현악의 연주를 축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브람스는 첼로를 위한 협주곡으로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후배이자 평생 애정을 갖고 보살펴 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듣고 그는 그렇게도 놀랬을 것입니다.
하마터면 태어나지 못할 뻔한 걸작품
드보르자크도 처음엔 첼로가 그 특성상 독주 악기로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인 첼리스트 하누슈 비한(Hanuš Wihan)이 몇 번이나 첼로 협주곡을 쓸 것을 제안했지만 계속 거절했습니다. 그러다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빅터 허버트(Victor Herbert)라는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의 첼로 협주곡 2번을 들은 드보르자크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감동을 받고 첼로 협주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한 많은 곡을 작곡했던 그는 이 곡에 그의 모든 경험과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마터면 태어나지 못할 번한 곡이 태어나서 불후의 걸작이 된 것입니다.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2번, 슈만의 첼로 협주곡과 더불어 세계 3대 첼로 협주곡으로 꼽히는 드보르자크의 B 단조 첼로 협주곡은 이렇게 1895년에 태어났습니다. 많은 첼리스트는 이 곡이 없었다면 첼로는 결코 독주 악기가 될 수 없었을 거라고 입을 모을 정도로 이 곡은 첼로의 위상을 끌어올린 곡입니다.
향수(鄕愁)와 첫사랑의 그리움이 어울려 낳은 명작
드보르자크는 미국이 뉴욕에 설립한 국립음악원의 초대 음악원장으로 초빙받아 약 3년간 미국에 체류했습니다. 결코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미국에 머무는 동안 그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써냈습니다. ‘첼로 협주곡’도 이때 태어났습니다. 몸은 미국에 있어도 그의 마음은 항시 고국과 자라난 고향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향수(鄕愁)는 깊어갔고 그 향수를 달래기 위해 보헤미아의 이주민이 사는 촌락을 찾아다니며 아메리카 인디언과 흑인의 노래를 공부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서 비롯되어 고국 체코의 음악과 신세계 미국의 흑인과 인디언의 민속 음악이 같이 녹아들어 탄생한 곡이 바로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입니다.
훌륭한 작품 뒤에는 많은 경우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드보르자크가 젊은 시절 프라하의 극장에서 비올라 연주자로 있을 때 극장의 여배우 요제피나(Josefina)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드보르자크는 그녀를 위해 연가곡 사이프러스(The Cypresses)를 작곡할 정도로 헌신적이었지만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귀족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드보르자크는 얼마 뒤 그녀의 동생인 안나(Anna)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지만 첫사랑 요제피나는 항시 그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첼로 협주곡이 그렇게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2악장의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2악장에서 드보르자크는 자신의 가곡 ‘홀로 있게 해주세요(Leave me alone)’를 사용했습니다. 젊은 날의 요제피나가 이 곡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첼로 협주곡의 작곡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요제피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곡하는 내내 드보르자크는 커다란 슬픔과 충격 속에 쌓여있었습니다. 첫사랑 요제피나는 결국 죽었습니다. 2악장을 흐르는 가곡 ‘홀로 있게 해주세요’의 선율을 듣노라면 첫사랑 요제피나를 기리는 애틋한 마음과 그 첫사랑이 살고 있었기에 더욱 그리운 고국에 대한 향수가 같이 어우러져 가슴을 아련하게 만듭니다.
곡의 구성
모두 3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제1악장: Allegro, 소나타 형식이며 서주 없이 제1 주제가 클라리넷에 의해 활기차게 나오면서 서정적인 선율의 제2 주제를 노래하게 되고 점차 솔로가 기교를 뽐내듯 오케스트라와 주고받으며 대화를 한다. 대담하고 웅장한 악장입니다.
제2악장: Adagio ma non troppo, 극히 서정적인 선율을 타고 첼로 솔로가 명상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노래하는 악기 첼로가 그 참모습을 보여주며 작곡가의 향수가 묻어 나오는 보헤미아의 향토성과 첫사랑의 그리움이 짙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제3악장: Allegro moderato, 자유로운 론도 형식의 발랄한 악장입니다. 보헤미아의 정서와 흑인 영가의 선율을 포함한 신세계 미국의 이국적 정취를 마음껏 표현한 악장으로 드보르자크의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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