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핵 잠재력, 핵무기 4330개 분량
남문희 기자 입력 2017.08.16. 17:42
북한의 화성 14호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 구조에 근본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 역시 그동안의 느긋한 태도와는 사뭇 대조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단은 압박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대화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해결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본토 어디든 도달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7월28일 두 번째 발사된 화성 14호에 대해 미국 국방성이나 미사일 전문가들은 대기권 재진입에 일부 미흡한 점이 있으나 몇 차례만 더 시험하면 내년에 실전 배치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미국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이제 남은 시간은 1년도 안 된다.
미국의 안전만 위협하는 게 아니다.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영향력이 송두리째 사라질 판이다.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보통 ‘핵우산’이라 불리는 ‘확장 억지(Extended Deterrence)’를 통해 보장돼왔다. 북한이나 중국이 한국·일본 등을 핵무기로 공격하면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을 때와 같은 전력 수준으로 응징 타격한다는 개념이다. ICBM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등 3대 타격 수단에 미사일방어(MD)와 초정밀타격 체제가 더해졌다.
그동안 일본은, 미국이 워싱턴 혹은 뉴욕이 공격당할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도쿄를 지켜줄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그 질문은 1960년 2월 미국의 온갖 방해에도 독자 핵 개발에 성공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먼저 던졌던 것이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과연 뉴욕을 희생할 수 있을까? 일본의 질문이 있을 때마다 미국은 자위대 고위 간부들을 미국 핵시설에 초청해 확장 억지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 부심했다.
그런데 중국보다 더 위험한 상대가 등장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핵 국가일 뿐 아니라 ‘미국의 확장 억지력을 무력화해 미·일 공조의 약화와 한·미 동맹으로부터 한국의 이탈(디커플링)을 촉진하는 것이 핵미사일 고도화의 전술적 목표’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한국과 일본이 ‘디커플링’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본 게이오 대학의 진보 겐 교수가 일본의 보수 시사 월간지 <보이스(Voice)> 7월호에서 분석한 내용은 시사적이다. 북한의 핵 독트린이 자위적 핵 보유 노선인 ‘최소한 억지’ 이론에서 한정적인 핵 사용을 정당화하는 ‘한정 핵’ 이론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적의 침략을 격퇴하고 보복하는 용도’로만 핵을 사용한다는 ‘최소한 억지’ 독트린을 내세웠다. ‘핵 선제 불사용’ ‘비핵 국가에 대한 핵 사용 금지’ ‘궁극적 비핵화 노선’ 등이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 전면전 상황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주일 미군기지 등에 대한 정밀타격 등에 한정적으로 핵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공격적 핵 독트린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 화성 14호가 미국의 확장 억지력을 무력화해 북·미 간의 전략 레벨에 ‘안정’이 이루어지면, 주한 미군기지나 서울 등 한국의 대도시 같은 전술 단위 또는 주일 미군기지·도쿄 같은 전역 단위에 도발을 해도 전선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핵의 한정적 사용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북이 서해 5도를 통상 병력으로 기습 점령하고 동시에 서울을 핵 공격하겠다고 위협해도 미군의 지원은 저지돼 한국이 반격을 못하고 주춤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이론적 가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중에는 기존 안보 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등장한다. 안보 전문가 휴 화이트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 교수는 국내 한 일간지와 인터뷰하면서 “미국의 확장 억지력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아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위치가 약해지고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불균형 상황은 과연 지속 가능할까? 화이트 교수는 “이런 상황이 되면 한국과 일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독자 핵무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전망했다.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당사자이면서 당사자가 아닌 듯 소외돼 있었다. 미국이 유사시 핵으로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구도였다. 그러나 그 신뢰가 깨지면 먼저 일본이 움직일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중국의 군사적 굴기와 미국의 쇠퇴 속에서 늘 기회를 엿봐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이미 도카이 지역에 핵 재처리 시설과 농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언제든 무기급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할 수 있다. 북한이 현재 보유한 플루토늄은 약 50㎏이다. 일본이 유럽에서 수입해 보유 중인 플루토늄은 40t이다. 2011년 7월2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이미 플루토늄 10t을 비축 중이라고 한다. 핵무기 1250개 분량에 해당한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이며 아시아에서는 단연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다.
한국도 핵무장 대열에 들어설까
한국의 핵 잠재력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2015년 4월 미국의 저명한 핵 군축학자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연맹(FAS) 회장이 그 실상을 공개했다. 이른바 <퍼거슨 보고서>에 묘사된 한국의 핵무장 잠재력은 충격적이다. 단적으로 경북 경주 월성에 있는 4기의 가압중수로형 원자로에서 그동안 추출해 쌓아놓은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무기급 플루토늄 26t을 얻을 수 있다. 핵무기 4330개를 만들 분량이다. 지금도 월성 원자로에서는 매년 핵무기 416개를 만들 수 있는 2.5t의 준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된다. 증폭분열탄이나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도 상당량 확보돼 있다.
한국은 플루토늄 재처리 공장을 1980년에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사망으로 흐지부지된 바 있다. 지금이라도 결심만 하면 단순하고 속도가 빠른 재처리 시설을 4~6개월 내에 완공할 수 있다고 한다. 수준 높은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면 초고속 전자 기폭장치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면 핵분열탄이나 증폭탄, 수소폭탄 실험은 할 필요도 없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핵 산업에서의 국제 협력 그리고 핵확산 방지에 대한 그동안의 국제 기여를 감안하면 한국이 핵확산방지조약(NPT) 제10조의 국익 조항을 원용해 NPT에서 탈퇴하고 핵 개발을 강행하면 국제적으로 막기가 어렵다고 <퍼거슨 보고서>는 지적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경솔하게 핵무장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북한과 중국에 의해 계속 코너에 몰리고 일본이 핵무장 카드를 꺼내드는 순간 한국 역시 핵무장 대열에 들어서게 되리라는 지적이다. 동북아 지각변동이 이 단계까지 가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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