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 Lounge(모든 장르)

운명적인 사랑 '존레논과 오노요꼬'

카이로스3 2015. 12. 12. 09:38

운명적인 사랑 '존레논과 오노요꼬'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세기의 사랑"이라 불렸던 두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존 레논이 죽기 전에..
애니 레보비츠라는
유명 사진가가 이들 부부를 찍은 것이다..

레보비츠가 존 레논에게 요코를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을
포즈로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존 레논이 옷을 다 벗고, 이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고 한다.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사랑에는..

창피.. 자존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1940년 10월 9일 출생. 1966년 오노 요코를 만남"

 

위의 짧은 글은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

단 한 줄로 표현한 자신의 프로필입니다.

존레논이 일본인 아내인 오노요코의 만남에 얼마나

비중을 두었는지 가늠이 됩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이야기는

'운명적 사랑'의 대표적인 예라 할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영혼의 동반자'로 받아들였으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고,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1966년 11월 9일.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는 런던 인디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 존 레논은 친구의 소개로 전시회 프리뷰를 보

러왔었는데, 요코는 그가 그 유명한 '비틀즈'의

멤버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요코가 비틀즈 멤버 중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링고스타" 뿐이었다고 합니다.

"링고"는 일본어로 '사과'와 비슷해서요..

 

전시품 가운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의 열린

틈에 있는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들여다 보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궁금증을 느낀 레논은 사다리를 올라갔고,

작은 글씨로 쓰인 'yes'를 발견합니다.

후에 레논은 이 'yes'가 의미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큰 충격과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관객이 직접 못을 박는 '못박기 회화'를 보고 레논은

 "내가 해보고 싶다"고 관심을 보였고.

요코는 "아직 전시회 오픈 전이니, 내일와서

해보라"고 거절하다가, 그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럼 5실링을 내고 못을 박아보라"고 권합니다

 

그러자 레논은 "그럼,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5실링을 내겠으니..

당신은 내가 상상의 못을 박도록 허락하면 된다"며

못을 치는 시늉을 합니다.

아래 글은 후에 이들이 밝힌 소감입니다.

"순간, 나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 오노 요코

"우리가 진짜로 만난 순간이었죠.

우리의 눈이 서로에게 멈추었는데,

그녀도 그걸 느끼고, 나도 그걸 느꼈습니다."-존 레논

 

당시 오노 요코는 서른 셋, 존 레논은 스물여섯.

당시 각자 배우자와 자녀를 둔 상태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이끌림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같은 영혼을 나눈 자'라고 표현하곤 했지만, 둘은 무척 다른 성장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노 요코는 1933년 2월 18일 일본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부모 덕분에 일찍부터 수준높은

음악, 미술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18세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한 요코는 

새러 로렌스칼리지를 나와 전위예술계에 뛰어듭니다. 

 

반면 존 레논은 영국 리버풀의 노동계급 출신으로.

선원인 아버지 알프레드 레논 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이혼했으며, 생모인 줄리아는 재혼하면서

존을 이모에게 떠맡겨버립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레논은 폭력사건에 자주 휘말리는

문제아로 여겨지다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을 보고 기타를 사서 독학,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아마 오노 요코가 독립적이고 자아가 강한 여성으로

자란 것은 가정환경과 교육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존 레논은 그녀의 이지적인 면에 반했다고 하고,

"주변에 외모가 예쁜 여자는 많았지만, 요코처럼

지적인 여성은 없었다" 고

공공연히 자랑하곤 했다고 합니다. 

 

서로 다르게 자란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요코는 존을 만나기 전까지 무명의 예술가였지만,

비틀즈나 존의 명성에 위축되는 모습은 눈꼽만큼도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예술이 비틀즈의 음악보다 우위에

있다는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자신과 비틀즈를 떠받드는 순종적인 여성들에게

질린 레논에게 이런 요코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이 만약 당신의 '진정한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

해 보라. 더 이상 술집에 가서 다른 남자들과 당구를

치거나 축구를 구경하고 싶겠는가.

물론 어떤 남자들은 사랑에 빠지고도 그런 친분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진정한 여자를 만난 순간,

그 동안 맺어왔던

모든 인간관계들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John Lennon 

 

예술과 인생을 공유하기 시작한 두 사람은

1968년 함께 [미완성 음악 1번: Two Virgins]

앨범을 발표했고.

이후 각각의 가정을 정리하고,

1969년 3월 12일 지브롤터에서 결혼합니다..

 

 

 

요코는 두번째 남편이었던

영화 감독 토니 콕스와 딸 키요코에게 떠나고,

 존은 아내 신시아와 아들 줄리안을 뒤로 해야 했습니다.

특히 존 레논은 이혼을 위해 적반하장으로 신시아의 불륜을 이유로 들어

소송을 었었지만. 요코의 임신(이후 유산)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시아가 항소하는 등 질펀한 법정 투쟁이 이어지고.

결국 존이 아내에게 10만 파운드의 위자료와 생활비를 내기로 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비틀즈의 멤버이자 존의 절친한 친구였던 폴 매카트니는 아버지와의

이별으로 상처받은 줄리안을 위해 '헤이 주드 Hey, Jude

(원제는 줄리안의 이름을 줄인 'Hey Jules'였다고 합니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가족을 버리고 결합한 것에 대해 많은 비난이 뒤따랐지만,

둘은 개의치 않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함께 있으면 세상의 다른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던 그들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나는 신에게 감사한다. 네가 내게로 온 것을,

운명이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을. 내가 태어난 건 오직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고, 내가 어른이 된 건 너를 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John Lennon

 

  

 

 

두 사람이 신혼여행 퍼포먼스로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펼친 '베드-인'

반전 퍼포먼스.

 

존은 1970년 비틀즈를 공식 탈퇴하고 요코와 함께
'플라스틱 오노 밴드'를 결성하고.

서로를 사랑 뿐 아니라
일도 함께 하는 파트너로 여겼습니다.


비틀즈의 해체를 오노 요코의 탓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요코는 존이 자신의 뜻을 펼치는 계기로 작용한 것 뿐.

존 레논은 "그녀는 내가 가정보다 더 숨통을 조이던

비틀즈와의 결혼에서
뛰쳐나올 용기를 주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부와 명예, 매스컴의 관심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음악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사업이 되어버린

비틀즈가 존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요코는 그의 손을 이끌어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고.

두 사람은 반전 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비틀즈 시절의 존이 꿈과 사랑, 희망을 노래했다면,

요코와 함께한 존은 전쟁반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

했습니다. 대중스타에서 탈피해 전쟁과 자본주의의

왜곡에 도전하는 반사회적 기수로 떠오른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변화시켰지만, 존이 요코를

따라간 부분이 분명 더 많았다. 

그에게 요코는 연인 뿐 아니라 어머니이자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고. 그의 음악은 물론 성격과 가치관도 

요코를 따라 변해갔습니다.

 

 페미니스트 운동을 주도했던 요코의 영향으로 자신의

가운데 이름인 '윈스턴(Winston)'을 '오노(Ono)'로

바꿔'존 오노 레논'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견고하던 두사람의 사이가 벌어진 시기도 있었습니다.
레논의 마약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예술가로서
요코의 자존심이 문제의 계기였습니다.

존은 반전운동가로서 자신의 활동에 대한 회의를

느꼈고, 떨어지지 않는

 '존 레논의 부인'이란 꼬리표는 요코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나는 존 레논의 부인이라는 고정 이미지로부터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그 전에는 가난하더라도 예술가라는 자부심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었지만,

존과 살게 되면서 사생활이 없어졌어요.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오노 요코

 

1973년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갑니다.
요코는 뉴욕에서 예술활동을 하고, 존은 둘의

비서였던 "메이 팡" 과 LA에서 살림을 차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존과 메이 팡의 동거가 요코의

허락 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요코는 존을 홀로 둘 수 없다고 판단,
그를 돌보기에 메이 팡이 적격자라고 여겼습니다.

 

이 시기의 존은 폐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폭음과 난동을 일삼았고, 클럽에서 시비를 걸다가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후에 존이 요코를 떠나 메이 팡과 보낸 1년 반은
'잃어버린 주말 Lost Weekend'이라고

불려지게 되는데.

메이 팡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존과 나는 숨어있는 것이 아니었고.

요코는 우리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알고 있었고,

매일 우리와 통화를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나쁜 길로 빠진 아들을 버리지 못하듯,

요코는 별거 기간에도 존을 돌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상식적인 연인 관계를 넘었던 것입니다.

 

결국, 서로를 떠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은 재결합하게 되고,

1975년요코는 마흔두살의 나이로 아들 "숀"을 낳다.  

마침 아이가 태어난 날은 10월 9일,

존의 35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존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아들을 돌보며

전업주부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였기에, 아들과 모든 일상을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5년간, 존은 음악과는 거리를 두고

오로지 가족을 위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요?  세계평화,

나 그리고 우리 엄마(요코)입니다."

- 존의 아들 숀 레논

 

1980년, 존은 긴 칩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아내와

공동으로 앨범을 제작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80년 12월 8일, 요코와 집으로 돌아오던 존은

 광적인 팬이었던 "마크 데이비드 채프만"의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5년간의 공백을 딛고 새 앨범 <더블 팬터지’>를

발표한 지 20일 만이었습니다.

존의 죽음을 돌이켜보며 오노 요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끔은, 그의 죽음이 꼭 꿈만 같아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느껴지죠.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냥 나 자신이었어요. 하지만, 그가 나에게

다녀간 후로,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게 됐죠.

 

 "너는 변했어. 네 삶이 모두 변했어" 라고요....

존은 나를 감싸는 커다란 우산이었어요.
나는 아직도 그를 향한 감정이 살아있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이제 그를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혼자서 꾸는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해요.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서로를 세상의 전부로 여겼던 두 사람.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극적인 러브스토리로 회자됩니다.

 

만75세인 오노 요코는 지금도

미술 전시회를 열고 레논 재단을 운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작가 "애니 레이보비츠"가 찍은

유명한 컷입니다.  

존과 요코가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오노 요코와 존레존

 

오노 요코와 존 레논. 다코타 빌딩 집에서.
뉴욕. 1980년 11월 8일

 

위의 사진은 침대 시위 사진이 아니라

존 레논이 죽기전,
애니 레보비츠라는 유명 사진가가 이 두 부부를

찍은 사진이랍니다.


레보비츠가 존 레논에게

"요코를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을 포즈로 보여줘요"

말하자, 레논이 옷을 다 벗고 나와서는

저런 포즈를 취하며 말했대요.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랍니다"라고요.

...

  

“사람들 눈에 요코가 어떻게 보이든 나한테는
최고의 여성이다. 비틀스를 시작할 때부터 내 주변에
예쁜 애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들은 없었다.
난 늘 ‘예술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꿈꾸어 왔다.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말이다.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난 태어났노라! 살았노라! 요코를 만났노라!”
"비틀즈 아니면 오노 요코,

나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 존 레논

 

"인생 자체가 예스입니다.
긍정적이란 뜻이죠. 세상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평화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겠습니다."-오노 요코

...

1940년 10월9일 영국의 항구 도시 리버풀에서 선창가

잡역부의 아들로 태어난 존 레논은 고교 시절
비틀즈의 전신이었던 그룹 Quarryman을

조직한 장본인이었으며

비틀즈를 창단했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비틀즈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가끔

자기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비틀즈에서 활약하면서도

“난 태어났노라! 살았노라! 요코를 만났노라!”
"비틀즈 아니면 오노 요코,

나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 존 레논

 

"인생 자체가 예스입니다.
긍정적이란 뜻이죠. 세상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평화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겠습니다."-오노 요코

자신의 개인밴드 'Plastic ono Band'를

조직해 싱글들을 발표했다.
비틀즈가 해체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되어 있지만

존 레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비틀즈를 떠난 첫번째 이유는 Yoko ono와의

만남이었고(1969년 지브랄타에서 결혼), 두번째는

자신이 추구하려는 음악이 더이상 비틀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비틀즈 후기는 폴의 독점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 첫번째 솔로 앨범

"John Lennon/Plastic ono Band"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그의 솔로 앨범 중 최고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명반으로 꼽을 수 있는

 "Imagine"은

1975년11월에 발매되었는데 여기에는

폴 매카트니를 공격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한때

폴과 사이가 극도로 나빴다.

존레논은 요꼬 오노와 숱한 화제를 뿌리며

계속 독자적인 활동을 했다.

 

그가 비틀즈를 떠난 첫번째 이유는 Yoko ono와의

만남이었고

(1969년 지브랄타에서 결혼), 두번째는 자신이
추구하려는 음악이 더이상 비틀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비틀즈 후기는 폴의 독점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오랜동안의 침묵을 깨는

"Double Fantasy"(Geffen 레이블)를 발표했다.

여기에 수록된 싱글 'Starting over'가 상승할 무렵인

1980년 12월8일 10시50분,그의 자택인 뉴욕의 맨해턴

다코다 아파트 앞길에서 평소 그에게 사인을 요구해
왔던 사진사 마이크 채프먼에게 5발의 총탄을 맞고

40세의 나이로 타계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가 팝 역사상 유례없이 성대한

추모 기도회가 곳곳에서 열리는가 하면

 'Time'과 'Newsweek'지의 커버로
등장하는 등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또한 마지막 앨범 "Double Fantasy"에 수록된

'Starting over'가 팝 차트를 석권해 레논은 명성은

죽은 뒤에 더욱 높아졌다.

 

존의 사후 요꼬오노는 남편을 추모하는 앨범

"Season of Glass"를 발표,

그중'Goodbye Sadness'는 미망인으로서의

애틋한 감정을 담고 있다.

죽은 후 더욱 유명해진 존 레논, 팝이 존재하는 이상

그의 노래는 계속 불려질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John Lennon - Starting Over

  

위 동영상이 끝나면 화면의 작은 조각 장면을 클릭!

김추자의 관련 영상을 다양하게 감상하십시오.

 

 

비틀즈_2.JPG 

 

 

'♬ Music Lounge(모든 장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Celin Dion Story  (0) 2015.12.18
Celin Dion 컴백  (0) 2015.12.18
I Drove All Night 2008 Live Video   (0) 2015.12.10
Patrick Hawes - Love's Promise  (0) 2015.12.09
Best Christmas songs 2016   (0) 201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