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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ackson - Billie Jean (2001년 9월 7일, 10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마이클의 솔로 데뷔 30주년 Live, Lyrics 해석)/ [월드 투어1984~2001]

카이로스3 2024. 11. 11. 17:32

https://youtu.be/pepA734Abh0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Live, Lyrics 해석)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마이클의 솔로 데뷔 30주년

(2001년 9월 7일, 10일 )

 

https://youtu.be/WTBwIqUWa18

Michael Jackson - HIStory Tour Seoul 1996 (VHS Master)

 

https://youtu.be/Hxgo-Qu-ZZE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 Live Bucharest 1996 (루마니아,부쿠레슈티)- HQ [HD]

 

1988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처럼 199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연이

DVD 고화질로 발매되었고, 현재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풀영상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공연이 수 천 명의 사람들을 기절시킨 그 전설의 공연이다. 

공연 중간에 앞줄에서 기절한 팬들이 응급 구조대원들의 들것으로 실려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에서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실신하고 기절하였지만

좋은 화질로 현재까지 볼 수 있는 공연이 극소수이기에

이 공연이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풀린 풀영상목록: 오슬로, 코펜하겐, 브레멘, 부에노스아이레스편)

 

1958년 8.29. 미국 인디에나주 ~ 2009.6.25(향년 50세)

데뷰: 구룹 1968 / 솔로 1971

 

[배우자]

 

리사 마리 프레슬리
(1994년 결혼 ~ 1996년 이혼, 2023년 사망)
데비 로우
(1996년 결혼 ~ 1999년 이혼)

 

[장르]

크로스오버

, 소울, 펑크, R&B, , 디스코, 

포스트 디스코, 댄스 팝, 뉴 잭 스윙

 

King of Pop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상징하는 표현 중 하나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20세기 대중문화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자 변화로 평가되며, 단순히 음악계를 넘어 20세기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한 명이다.[42] 미국 팝 시장에서 흑인 가수의 비율이 높지 않았던 시절, 전 세계적 문제였던 인종차별을 음악을 통해 완화시키며 문화 예술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 이전까지 미국 팝시장의 주도권은 늘 백인 싱어에게 쥐어져 있었으나, 잭슨이 등장한 이후 최초로 미국 흑인이 가요 시장의 주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마이클 잭슨의 등장 이후, 대중음악의 주류 장르는 록 음악에서 팝 / 알앤비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의 등장이 대중음악을 주름잡는 장르의 종류마저 변화시키게 된 것이다.

그의 압도적인 성적에 걸맞게, 마이클 잭슨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상업 수익을 남긴 아티스트중 하나이다. 전체 앨범 판매량은 비틀즈와 엘비스 프레슬리 뒤를 이은 3위이고, 단일 앨범 판매량[43]은 압도적인 1위이다. 또한 마이클 잭슨은 생전과 사후 합쳐 약 800여개의 상을 수상하며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렸고,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빌보드 핫 100 1위를 달성한 최초의 아티스트로 기록되어 있다.

마이클 잭슨은 위대한 음악가였지만 사회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는데, 금전적인 자선활동 외에 자신의 음악을 통해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메세지를 전달하였다. Heal the World, Black or White, Earth Song, We Are the World, What more can I give 등의 곡들이 대표적. 이러한 곡들을 통해 잭슨은 세계 평화, 친환경 운동, 전쟁 반대, 테러 반대 등의 메시지를 던졌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공연을 가지며,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고 실제 통일하면 공연하러 오겠다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44] 이 날 공연에서 역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퍼포먼스가 공연 중간에 등장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연예인[45]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고, 20세기 큰 영향력을 지닌 아티스트로 평가받으며 이는 21세기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그는 팝 역사상 가장 많은 기부를 한 인물[46]이기도 했다.

1980년대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하나의 사회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앨범 Thriller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고[47] We Are the World, Heal the World와 같은 음악 활동과 기부로 박애주의적 활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Bad, Dangerous 등을 성공시키며 대중에게 전례 없는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으며 이는 사회적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199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중문화의 세계화에 처음 등장한 서구 문화의 상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잭슨은 작사/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대중가수로서는 최초로 미국 국립 무용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성추문 루머로 인해 언론들에게 완전히 먹잇감이 되어 버렸고 그를 정신이상자[48][49]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으며,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언론의 매도는 그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51]

2005년 2차 아동 성추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그는 대부분의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몇 년간 칩거 아닌 칩거를 하게 되었다.[52] 이 과정에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었으며 사실상 정상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던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은 4년만에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런던에서의 콘서트 투어[53] 계획을 발표하며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같은 해 7월부터 런던에서의 콘서트를 시작으로 활동 재개가 눈 앞에 왔지만, 6월 25일 주치의였던 콘레드 머레이의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인한 심장마비로 향년 5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지속되는 그에 대한 수많은 더러운 루머들은 그의 문화적 유산과는 별개로 그의 위상을 추락시켰으며, 전문가들은 그의 이름이 음악사에서 잊힐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적에서 발견되는 여러 선행에 따라 재평가를 받게 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음악의 영원한 전설로 기억되고 있다.

 

1984년 Victory 월드 투어

Billie Jean - 미국 캔자스 시티 1984년
Billie Jean - 미국 댈러스 1984년
Billie Jean - 캐나다 토론토 1984년
Billie Jean - 미국 로스앤젤레스 1984년
Beat It - 캐나다 토론토 1984년
Human Nature - 캐나다 토론토 1984년
Wanna Be Startin' Somethin' - 캐나다 토론토 1984년
Human Nature - 미국 댈러스 1984년
Beat It - 미국 댈러스 1984년
Off the Wall - 미국 뉴욕 1984년
This Place Hotel - 미국 캔자스 시티 1984년
Rock With You - 캐나다 토론토 1984년
She’s out of my life - 캐나다 토론토 1984년
Workin’ Day and Night - 캐나다 토론토 1984년

 

 1987년-1989년 Bad 월드 투어



16개월간 진행된 이 투어는 총 15개국 4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123번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는 1980년대 진행된 투어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거두었으며 단독 아티스트로서는 최고 기록이었다.

1987년 6월 29일, 잭슨의 매니저 프랭크 디리오가 그의 첫 번째 단독 월드 콘서트 투어를 시작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펩시의 후원하에 일본에서 시작되었으며 600명이 넘는 기자, 카메라맨, 팬들은 잭슨의 일본 도착을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기다렸다. 잭슨의 투어 수행원 132명과 함께 22대의 트럭을 실어 나르는 전세 점보 제트기가 사용되었다. 무대 세트는 700개의 조명, 100개의 스피커, 40개의 레이저, 3개의 거울, 2개의 24x18피트 스크린을 사용했다. 공연자들은 70벌의 의상을 입었는데, 그 중 4벌은 광섬유 조명이 붙어 있었다. 일본에서의 첫 14일간의 관객수는 45만 명으로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잭슨은 1988년 5월 23일 플라미니오 경기장에서 그의 유럽 투어를 시작했다. 경찰과 보안 요원들은 35000명의 군중 속에 깔려 있는 수백 명의 팬들을 구조했다. 경찰은 6월 2일 비엔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130명의 여성이 실신했다고 보고했다. 6월 17일 잭슨은 코믹 배우 찰리 채플린의 미망인 우나 오닐을 만나기 위해 베베이로 여행을 떠났다. 잭슨은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고 방문 후 말했다.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콘서트 중 하나는 1988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되었다. 이때 티켓 수요가 150만 회를 넘어섰는데, 이는 72000명의 만석을 20번 채울 수 있는 규모였다. 결국 7번의 콘서트로 504000명의 관객을 수용하였으며 이는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 이후 관계자들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했다. 잭슨은 총 3번의 월드 투어를 진행했는데 그중 15번[27]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했으며 110만 장 이상의 티켓을 판매했다. 이는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압도적인 수치로 웸블리 스타디움 역사상 가장 많은 티켓을 판매한 아티스트이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았다.

당시 유럽을 포함한 투어 일정에 포함된 여러 나라의 관객과 팬들은 단지 마이클 잭슨을 만난다는 사실에 흥분하였으며 수많은 인파와 기자, 파파라치들로 인해 마이클 잭슨은 정상적인 이동이 불가능했다. 9월 11일 리버풀에서 열린 마지막 유럽 콘서트는 아인트리 레이스 코스에서 열렸다. 약 1550명의 팬들이 125000명 이상의 관중들 사이에서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되었다. 이는 역사상 가장 규모있는 콘서트이기도 하다.

1988년 런던 웸블리 공연이 DVD로 발매되었고 유튜브 공식 채널에 풀영상이 올라가있다. 그러나 런던 공연 말고는 1987년 일본 요코하마 공연이 그나마 제일 고화질이고, 1988년 로마 공연도 반쯤만 풀린 상태이다. 심지어 The Way You Make Me Feel과 Man in the Mirror 이 2곡은 런던 공연을 제외하면 고화질 버전이 전무하다.

1989년 로스 엔젤레스 마지막 날 공연 오디오 풀버전이 공개되었지만 영상은 여전히 볼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Bad 월드 투어 오디오, 비디오, 팬캠 재생목록

Billie Jean - 일본 도쿄 1987년
Billie Jean - 일본 요코하마 1987년
Billie Jean - 일본 오사카 1987년
Billie Jean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Billie Jean - 미국 로스앤젤레스 1989년
Wanna Be Startin' Somethin'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Another Part of Me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MV 버전)[28] (DVD 버전)
Off the Wall - 일본 요코하마 1987년
Human Nature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Smooth Criminal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I Just Can't Stop Loving You - 이탈리아 로마 1988년
She's Out of My Life - 일본 요코하마 1987년
잭슨 5 메들리 - 일본 요코하마 1987년
Rock With You - 일본 요코하마 1987년
Dirty Diana - 이탈리아 로마 1988년
Thriller - 일본 요코하마 1987년
Thriller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Workin' Day and Night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Beat It - 일본 요코하마 1987년
Beat It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Bad - 일본 요코하마 1987년
Bad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The Way You Make Me Feel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29]
Man in the Mirror - 영국 런던 웸블리 1988년
Man in the Mirror - 미국 로스앤젤레스 1989년
Man in the Mirror - Bad 월드 투어 하이라이트 (영화 Moonwalker)

 

1992년-1993년 Dangerous 월드 투어



1989년 1월, 성공적으로 Bad 월드 투어를 마친 잭슨은 더이상의 투어를 하지 않고 음악 작업을 하는 데 전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후 1991년 11월 그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 Dangerous가 발매된 후, 1992년 2월 3일 뉴욕시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Dangerous World Tour를 발표하기 위한 기자 회견이 열렸다. 200명이 참석한 이 행사는 잭슨의 스폰서 펩시가 기획했다. 마이클 잭슨의 역대급 공연 중 하나라 불리는 부쿠레슈티공연도 이 투어에서 진행된 것이다. 잭슨은 또 한 번 투어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린이들과 환경을 돕기 위해 새롭게 설립된 <Heal the World Foundation>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마이클 잭슨은 1993년 크리스마스까지 1억 달러 모금을 목표로 삼았다. 69번의 콘서트에서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으며 잭슨의 첫 번째 아동성추행 사건과 진통제 중독으로 인해 투어를 중단하게 된다. Dangerous World Tour부터 잭슨은 이전에 서구 문화의 영향권에 포함되지 않았던 국가나 지역들도 투어에 포함시키는데, 앞서 기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마이클 잭슨은 그들에게 있어 최초의 서방국가 연예인이었다. 그에 따른 충격과 인기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992년 6월 당시 세계 최대 운영기였던 러시아 안토노프 An-124 화물기가 개막 유럽식 다리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런던으로 설정된 장비와 무대를 운송하기 위해 예약되었다. 그러나 민간 항공기 인증과 관련된 문제로 인해 잭슨은 대신 페덱스 익스프레스[30] 보잉 747을 사용하게 되었다. 도착 즉시, 그 장비는 65대의 화물차로 유럽을 가로질러 운반되었다. 화물은 조명 1,000개, 전기 케이블 10마일, 비디오 화면 9개, 스피커 168개를 포함하고 있었다. 약 2톤의 의류가 운반되었다. 이 의상은 마이클 부시와 안젤레노스 데니스 톰킨스에 의해 디자인되었는데, 그는 잭슨과 함께 그가 원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의 아이디어를 살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두 벌의 의상은 높이가 9피트, 너비가 7피트, 무게가 각각 40파운드였고, 전산화레이저가 제어하는 광섬유등이 달려 있었다. 한 재킷에는 36개의 스트로보 조명을 켜기 위해 3,000볼트를 발생시키는 배터리 벨트가 장착되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폭발적인 효과를 감추기 위해 플랩을 숨겼다. 유럽에서 온 천 야드의 옷감은 18캐럿 금을 포함한 잭슨을 위한 검은색과 금색 옷을 포함하여 의상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의상에만 200만 달러가 들었다. 이 투어는 57000명의 평균 관객을 동원하여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31]이고 이는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최고기록이며 90년대 가장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이다.

1988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처럼 199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연이 DVD 고화질로 발매되었고, 현재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풀영상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공연이 수 천 명의 사람들을 기절시킨 그 전설의 공연이다. 공연 중간에 앞줄에서 기절한 팬들이 응급 구조대원들의 들것으로 실려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32] 사실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에서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실신하고 기절하였지만 좋은 화질로 현재까지 볼 수 있는 공연이 극소수이기에 이 공연이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풀린 풀영상목록: 오슬로, 코펜하겐, 브레멘, 부에노스아이레스편)

Billie Jean - 독일 뮌헨 1992년
Billie Jean - 독일 쾰른 1992년
Billie Jean - 노르웨이 오슬로 1992년
Billie Jean - 덴마크 쾨벤하운 1992년
Billie Jean - 독일 브레멘 1992년
Billie Jean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1992년
Billie Jean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3년
Jam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3년
Wanna Be Startin' Somethin'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3년독일 뮌헨 1992년[33]
Human Nature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3년
Smooth Criminal - 멕시코 멕시코시티 1993년
잭슨 5 메들리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3년
Thriller - 노르웨이 오슬로 1992년
Beat It - 노르웨이 오슬로 1992년독일 뮌헨 1992년[34]
Will You Be There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3년
The Way You Make Me Feel - 일본 도쿄 1992년
Bad - 노르웨이 오슬로 1992년
Dangerous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3년
Black or White - 영국 런던 웸블리 1992년
Heal the World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93년
Man in the Mirror - 노르웨이 오슬로 1992년

1996년-1997년 HIStory 월드 투어



이 투어는 1996년 5월 29일에 발표되었고 잭슨의 Dangerous 월드 투어 이후 진행된,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월드 투어이다. 총 5개 대륙, 82번의 공연에서 4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첫 콘서트는 프라하의 레트나 파크에서 공연되었으며, 12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역사상 가장 규모있는 콘서트 중 하나였다. 1996년 10월 7일, 그는 아랍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했다. 그는 튀니지에서 90000명의 팬들 앞에서 콘서트를 진행했으며 호주 시드니에서 투어를 하는 동안 데비 로우와 비공개적으로 결혼했다. 1997년 1월 3일부터 4일까지, 잭슨은 하와이 호놀룰루의 알로하 경기장에서 35000명의 관중을 동원하여 유일한 두 번의 미국 콘서트를 진행하였으며 경기장을 매진시킨 역사상 최초의 예술가가 되었다. 한편, 이 콘서트를 브루노 마스가 보기도 했다. 약 55000명의 평균 관객을 동원하였으며 이는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이자 Dangerous 월드 투어에 이어 90년대 두 번째로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이다. 립싱크 논란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Wanna Be Startin' Somethin"과 "Jackson 5 Medely"를 제외한 곡들은 부분 라이브 혹은 올 립싱크로 진행되었다.[35]히스토리 투어 시기에 마이클 잭슨의 목 상태는 굉장히 좋지 않았다.[36][37] 그러나 그 상태로 투어를 진행해야 했던 잭슨은 퍼포먼스의 비중을 과감히 늘리고 세트리스트의 거의 모든 곡들을 립싱크 처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리 퍼포먼스를 증가시킨다 하더라도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2차전은 1997년 5월 31일 독일 브레멘의 베서스타디온에서 시작되었다. 세트 리스트 변경사항에는 Blood On The Dance Floor가 추가되었고, 이후 Off the Wall 메들리와 The Way You Make Me Feel의 제거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Blood On The Dance Floor는 1997년 8월 19일 오슬로 콘서트가 끝난 후 세트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잭슨은 39번째 생일을 맞아 덴마크 코펜하겐의 파켄 스타디움에서 60000명의 팬들과 함께 공연을 했다. 그는 You Are Not Alone 공연 후 무대에서 깜짝 생일 케이크, 행진 밴드, 불꽃놀이를 선보였다. 벨기에 오스텐드의 히포드롬 웰링턴에서의 콘서트는 원래 1997년 8월 31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웨일스 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9월 3일로 연기되었다. 마이클은 1997년 8월 24일과 26일 핀란드 헬싱키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공연을 했다.

이전 투어들과는 달리 정발된 DVD는 없고, 저화질 VHS 서울 내한 콘서트가 있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투어들과는 달리 꽤 많은 고화질 영상들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상태라서 여러 공연들을 유튜브에서 감상 가능하다. 특히 독일 뮌헨 HD로 촬영되어 풀린 콘서트가 있으나, 잭슨의 목소리 상태가 좋지 않다는게 유일한 흠이다. [38] 2020년 유튜브에서 음질이 매우 깨끗한 내한 공연 전체가 올라왔다.[39]

1996년 브루나이와 1997년 코펜하겐 공연때는 괜찮은 목소리를 들려줬다.

Billie Jean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1996년
Billie Jean - 튀니지 튀니스 1996년
Billie Jean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1996년
Billie Jean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1996년
Billie Jean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1996년
Billie Jean - 뉴질랜드 오클랜드 1996년
Billie Jean - 뉴질랜드 오클랜드 1996년
Billie Jean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1996년
Billie Jean - 필리핀 마닐라 1996년
Billie Jean -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 1996년
Billie Jean - 독일 뮌헨 1997년
Billie Jean - 스위스 바젤 1997년
Billie Jean - 덴마크 쾨벤하운 1997년
Billie Jean - 스웨덴 예테보리 1997년
Billie Jean - 핀란드 헬싱키 1997년
Billie Jean -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1997년
Scream/They Don't Care About Us/In the Closet[40] - 브루나이 1996년
Wanna Be Startin' Somethin' - 덴마크 코펜하겐 1997년
Stranger in Moscow - 덴마크 코펜하겐 1997년
Smooth Criminal - 스웨덴 예테보리 1997년
You Are Not Alone - 스웨덴 예테보리 1997년
The Way You Make Me Feel -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푸르 1996년
잭슨 5 메들리 - 브루나이 1996년
Rock with You/Off the Wall/Don't Stop 'Til You Get Enough - 뉴질랜드 오클랜드 1996년
Thriller - 스웨덴 예테보리 1997년
Beat It - 스웨덴 예테보리 1997년
Come Together/D.S. - 뉴질랜드 오클랜드 1996년
Blood on the Dance Floor - 스웨덴 예테보리 1997년
Dangerous - 핀란드 헬싱키 1997년
Black or White - 브루나이 1996년
Earth Song - 스웨덴 예테보리 1997년
Heal the World - 뉴질랜드 오클랜드 1996년
History - 스웨덴 예테보리 1997년

기타 공연

1996년 7월 16일 History 투어을 실행하기 전, 브루나이에서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공연을 개최하여 6만 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 의상과 세트 리스트는 Dangerous 투어와 거의 동일한데, 끝 부분에 You Are Not Alone과 Earth Song 당시 최신곡들이 추가되었다. 마이클이 Billie Jean Beat It을 생전 마지막으로 풀 라이브로 부른 공연이다. 특이하게도 Billie Jean을 이전과 달리 빠른 템포가 아닌 원곡과 동일한 템포로 불러서, 마이클이 유일하게 100% 라이브로 부른 원곡 템포의 Billie Jean이다. ##

1999년 6월 25일 대한민국 서울, 6월 27일 독일 뮌헨에서 마이클과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MJ & Friends 콘서트 2개가 진행되었다. 서울 내한 뮌헨 특히, 1999년 서울에서 열린 마이클잭슨의 자선공연 수익금은 국민성금, 삼성전자 후원금과 합쳐져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통한 개도국 교육지원 사업에 사용됐다. 참고로 뮌헨 공연 때 마이클이 Earth Song를 부르던 중 올라타 있던 플랫폼이 꺼져서 사고를 당했는데, 당시 사고가 영상에 나온다. 근데 마이클은 척추를 부상 당했는데도 끝까지 다음 노래 You Are Not Alone을 불렀다. (이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부상당한지 모를 정도로 태연하게 진행한다)

2001년 9월 7일, 10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마이클의 솔로 데뷔 30주년, 그리고 Invincible 앨범 홍보를 위해서 공연했다. 여러 가수들이 초청해서 마이클의 여러 노래들을 커버했다. 이때 잭슨 5 멤버들로 오랜만에 형제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함께 듀엣으로 부른 The Way You Make Me Feel 마이클이 혼자서 부른 노래는 Billie Jean, Black or White, Beat It, 그리고 당시 신곡이였던 You Rock My World. 아쉽게도 그의 생전 마지막 대형 콘서트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9.11 테러 하루 전에 진행했다. 공연 전체

마이클의 생전 마지막 라이브 퍼포먼스는 2002년 4월 24일 이였다. 뉴욕시 아폴로 극장에서 진행되었으면서,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개최한 모금 행사였다. Dangerous, Black or White, Heal the World 3곡을 불렀다. Dangerous 일부 영상, 나머지는 오디오

2009년, This Is It 투어 당시 리허설 영상이 담긴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 개봉했다.

 

[참고: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