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밴드 - 나 어떡해 [불후의 명곡2 전설을 노래하다/Immortal Songs 2] | KBS 220806 방송
김창완..1954.2.22. 서울대 잠사학과,산울림 리더, 가수,DJ
김창완(보컬, 기타), 김창훈(보컬, 베이스), 김창익(드럼)의 삼형제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록 밴드.[6] 1977년 <산울림 새노래 모음>로 데뷔했다.
산울림 삼형제는 어릴 적에 주말마다 방에 계란판을 붙여서 방음실로 만들고 싸구려 기타로 자기들이 만든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7] 이후 1977년에 MBC 대학가요제가 처음으로 개최된다고 하여 삼형제가 무이(無異, 평소와 다름없음)[8]라는 밴드로 대학가요제에 참가한다. 당시 김창훈은 샌드페블즈 5기 멤버(75학번)로 있었는데, 샌드페블즈 6기(76학번)에게 바톤 타치하고 무이로 들어오면서 자작곡 "나 어떡해(이 곡은 산울림 2집에 리메이크되어 다시 실린다)" 를 샌드페블즈에게 주었다. 대학가요제 예선에서 무이는 "문 좀 열어줘(산울림 1집 수록곡)" 로 1위, 샌드페블즈는 "나 어떡해"로 2위를 기록했는데 김창완이 1975년 졸업생이라 재학생만 참가할 수 있는 규정에 걸려서 무이는 결국 탈락하고 제1회 MBC 대학가요제의 대상은 샌드페블즈가 탔다. 그후 이제 사회 생활을 할 나이가 되었기에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을 마지막으로 기념하는 의미에서 데모 테이프를 서라벌 레코드에 직접 방문해 데모 테이프를 줬다고 한다. 그당시 녹음하려면 비용이 200~300이여서 어떻게든 자비로 하려 하였으나 서라벌 레코드에서 그냥 무료로 녹음을 해준다 하여 계약서고 뭐고 그냥 바로 레코딩 날짜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그후 발매된 1집 레코드 판이 40만 장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한 대박이었다고 한다. 이후 2007년에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5위에 뽑혔다. 참고로 7위가 산울림 2집이다.[9]
초기(1~3집)에는 펑크 록 느낌의 디스토션이 강한 공격적인 사운드를 많이 보여줬는데 이 스타일은 영미 록의 프로그레시브나 사이키델릭 성향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어떠한 선대 록 음악의 성향도 받아들이지 않은 산울림만의 독창적인 작법이었다. 실제로 삼형제는 데뷔 전 대학 그룹 사운드가 흔히 하던 카피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에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부터 작곡에 몰두 데뷔 시점에 이미 상당한 분량의 창작곡이 있었다.[10] 산울림의 초반이 그야말로 전설로 남게 된 것은 미숙한 실력과 부족한 장비를 가지고도 도달하였던 파격에 가까운 독창성 때문이다.[11] 오로지 외국 음악 카피만 하면서 자체 창작은 도외시하고 연주력에만 목 매달던 일부 음악인들에게 산울림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직접적으로는 3집까지는 한국식 개러지 록의 탄생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이들의 초기작은 "대한민국 헤비메탈의 시작" 이라고도 평가된다.[12] 어떤 음악에도 영향받지 않았으나 한국 거의 모든 록커들에게 영향을 줬다. 지저분한 퍼즈톤 위에 깔리는 김창완의 나레이션에 가까운 나지막한 노래와 관조적인 가사는 그 당시의 대중들에게 상당히 충격이었다고 한다. 실험적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뛰어넘어서 사랑받는 강한 음악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중기와 후기를 거쳐가면서 산울림은 포크락과 디스코 등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였고 계속적으로 많은 한국 록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때의 발라드 노래들은 초기의 록적인 감성을 후퇴했지만 대중들의 많은 인기를 끌었다. 아이유가 훗날 리메이크했던 <너의 의미>가 바로 이 시기의 곡이다.
그러면서도 정규 앨범 사이사이에 <개구쟁이>나 <산할아버지>, <외계인 ET>와 같은 동요 앨범을 내기도 한다. 산울림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로 비관적이고 시니컬한 노래와 어린이를 위한 동요를 동시에 작곡할 수 있는 다양한 감성을 소화할 수 있는 밴드라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1월 29일 드럼을 담당하고 있는 막내 김창익이 캐나다 직장에서 눈길에 지게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지게차에 깔려 사망하는 불의의 사고가 있었다.[13] 이로 인해 김창완은 "산울림은 가족 밴드다. 막내가 이렇게 떠나 버린 이상 예정되어 있던 것 이상의 산울림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건 없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로써 산울림은 해체하고 긴 전설의 막을 내린다.
여담이지만 활동 당시 유난히 심의 태클을 많이 받은 밴드 중에 하나다. 당시는 악보 검열, 가사 검열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산울림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아니 이게 왜 심의야" 하고 놀라겠지만 이게 다 그 심의 필터에 걸러져서 나온 물건이라고 한다. 참고로 심의 사유는 퇴폐 내지는 가사가 너무 슬프다 등등 대표적으로 1집은 모든 곡이 싸그리 심의에 걸렸고 "아니 벌써"의 경우 가사를 전체적으로 갈아 엎었다고 한다.[14] 김창완 본인의 말로는 개작 전 가사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굉장히 비관적이고 우울한 가사였다고 한다. 이외에 3집의 "내 마음"도 원래 "황무지"라는 제목이었다가 바뀌었다. 이후에 김창완이 그 울분(?)을 뒤에 풀어낸 노래를 김창완밴드의 산울림 리마인드 앨범에 묶어 발매했는데, 제목도 '금지곡'이고 노래 내용도 '인생 그거 쉬워요. 동물 학대하지 말고 자연을 지켜요.' 이런 내용이다. 사실 내용을 보면 지금도 19금 먹고 가사를 변경해야 할 암울한 곡들이 심히 많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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