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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보다 100년 앞서 1억명 숨진 ‘스페인 독감’2020년과 닮았네

카이로스3 2020. 9. 4. 15:02

코로나19보다 100년 앞서 1억명 숨진 ‘스페인 독감’

2020년과 닮았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입력 : 2020.09.04 11:31

 

19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더블린의 가족과 고양이. 고양이에게도 마스크를 씌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 | 황금시간 제공

 

팬데믹 1918

캐서린 아놀드 지음·서경의 옮김/황금시간/383쪽/1만8000원

안면 마스크는 이 역병의 상징이다. 바깥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위법이 됐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마스크 착용 강요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분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스크를 쓴 채 일상생활 하는 사람들, 교통정리 하는 경관들, 반려동물과 장난치는 아이들까지. 신혼여행 중이던 한 커플은 의사에게 사랑을 나눌 때도 마스크는 쓰고 있었다는 고백을 했다고 한다. 당시 사진을 보면 기괴한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코로나19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 앞서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팬데믹의 풍경이다. <팬데믹 1918>은 1918~1919년 세 번의 감염 파도가 몰아치면서 최대 1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H1N1 바이러스, ‘스페인 독감’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방대한 1차 자료와 기록 문서를 바탕으로 치명적인 질병의 무자비한 횡보를 따라가면서, 당시 죽음에 직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2018년 나온 책의 서술은 과장 없이 담담하지만, 쪽을 넘길 때마다 한숨 쉬게 된다. 분투와 어리석음이 뒤죽박죽된 100여년 전 상황이 2020년 오늘과 어이없을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스페인 독감’과 직접적 관계는 없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은 중립국이라 이 인플루엔자의 변종을 적극적으로 보도했고, 영국이나 미국은 언론 검열로 소식을 이후에나 전한 탓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태평양에서 북극해까지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감염됐고, 이중 10~20%가 숨졌다. 1차 세계대전 사망자는 3800만명. 이 보이지 않는 적은 전쟁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전염성이 강한 스페인 독감은 증상도 무시무시했다. 최소 24시간부터 4~5일의 잠복기가 지나면 두통, 오한, 마른기침, 발열 등이 나타났고, 전신 피로와 함께 기관지염이나 폐렴이 뒤따랐다. 특히 폐에 고름이 차면서 산소가 부족해져 발생하는 ‘헬리오트로프 청색증’ 때문에 피부가 검푸른 색으로 변했고,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이거나 정신착란을 보이며 죽어갔다. “공기가 빠져나가 폐가 완전히 짜부라지면, 공기가 피부층 밑에 가두어졌다. 시신을 수의로 감싸면 몸이 탁탁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라이스 크리스피 시리얼에 우유를 부을 때 나는 것처럼 끔찍한 소리였다.”

저자는 스페인 독감 진원지의 유력한 후보인 프랑스 북부 에타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규모 군사기지가 있던 에타플에는 병사들만이 아니라 참전중인 말 수천 마리와 식량 조달을 위한 돼지, 오리, 거위, 닭도 있었다. 아직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에는 오리가 조류 독감 바이러스의 병원소로서 배설물로 토양을 오염시키고, 먹이를 뒤지던 돼지가 이것을 삼켜 바이러스를 배양했다가 다시 인간과 접촉하면서 인간 독감 바이러스가 기존의 조류 바이러스와 결합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또다른 위험 요소는 중국인 노동자였다. 앞서 1910~1911년 만주에선 폐페스트가 창궐했는데 전쟁 지원을 위해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옮겨왔다. 수많은 보병 사단이 이곳에 집결했다가 철도를 통해 흩어졌다. 밀접 접촉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전파되는데 전쟁이 앞장선 셈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18년 여름, 독일군도 못한 유럽 정복을 스페인 독감이 해냈다. 이 질병의 가장 섬뜩한 사실은 전쟁 자체가 그러하듯 젊고 건강한 청년들에게 더 치명적이었다는 점이다. 책에선 가족과 이웃, 친구를 수없이 잃어야 했고, 죽은 이의 존엄을 지켜줄 여유조차 없던 참혹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월트 디즈니, 존 스타인벡, 마하트마 간디, 루스벨트 대통령 등 명사들도 스페인 독감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제 막 유명해지려던 젊은 화가 에곤 실레는 임신 중인 아내가 죽고 사흘 만에 뒤따라 숨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전장에서 살아남고도 바이러스에는 패배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죽음은 블랙코미디 같았다. 그의 장례 행렬은 휴전 협정을 열광적으로 축하하던 군중과 맞닥뜨렸는데 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서로 입을 맞추고 있었다고 한다.

팬데믹의 현실 그 자체가 부조리였다. 질병의 기원을 두고 독일 스파이들이 의도적으로 독가스를 살포했다는 소문이 확산됐으며, 바이엘 아스피린에 병균이 심어져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독일 역병”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종교적 광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죄악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보기도 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려 행사 이후 3주 만에 8000명 가까이 숨졌고, 공공 서비스가 마비되면서 중세 흑사병 시절로 돌아가게 됐다. 공기 자체가 유독하다는 말이 돌면서 이탈리아에선 집을 밀봉해 질식사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1세기의 팬데믹을 지나고 있는 인류는 여전히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교훈과 대처법을 얻을 수 있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젊은이들이 죽은 이유를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이라거나, 갑작스런 종식을 ‘집단 면역’ 때문으로 추정해보는 것도 그 덕분이다. 책에선 당시 싸움의 의미를 이렇게 전한다. “보통 사람들의 작고 일상적이면서도 영웅적인 행동이었어요. 1918년에는 영웅적인 행동이 서부 전선보다 가정 전선에서 더 많이 있었던 겁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인플루엔자 A형(H1N1) 바이러스. 황금시간 제공

1918~1919년 강력한 2차에 이어 3차 대유행까지 스페인 독감의 추이를 그린 그래프. 황금시간 제공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 포트라일리에 위치한 캠프 펀스턴 군인병원 모습. 캠프 펀스턴은 미국 스페인 독감 대유행의 진원지 중 하나였다. 황금시간 제공

1918년 9월28일 미국 뉴올리언스 캐널스트리트에서 펼쳐진 제4차 자유 국채 운동 퍼레이드에 참가한 간호사들. 보건 당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퍼레이드가 진행됐으며 많은 군중이 운집했다. 황금시간 제공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이라는 재앙이 동시에 덮친 가운데 1918년 12월 프랑스로 원정을 떠나는 미 육군 행렬. 황금시간 제공

1918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전차를 탈 수 없었다. 황금시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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