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Mauriat: La Decadanse (퇴폐) 1972 Live
https://youtu.be/1kTNhVXJhF0?list=RD1kTNhVXJhF0
Paul Mauriat: La Decadanse 1972 Live
원곡: La Decadanse 데카당스 (퇴폐) - S,갱스부루(1928 - 1991) & 제인 버킨
1972
Jane Birkin & Serge Gainsbourg - La Décadanse 라 데카당스 (퇴폐)
Tourne-toi
- Non
- Contre moi
- Non, pas comm'ça
- ...Et danse
La décadanse
Bouge tes reins
Lentement
devant les miens
- Reste là
Derrièr' moi
Balance
La décadanse
Que tes mains
Frôlent mes seins
Et mon cœur
Qui est le tien
- Mon amour
De toujours
Patience
La décadanse
Sous mes doigts
T'emmènera
Vers de lointains
Au-delà
- Des eaux troubles
Soudain troublent
Mes sens
La décadanse
M'a perdue
Ah tu me tues
Mon amour
Dis m'aimes-tu ?
- Je t'aimais
Déjà mais
Nuance
La décadanse
Plus encore
Que notre mort
Lie nos âmes
Et nos corps
- Dieux Pardo-
Nnez nos
Offenses
La décadanse
A bercé
Nos corps blasés
Et nos âmes égarées
- Dieux !
Pardonnez nos offenses
La décadanse
A bercé
Nos corps blasés
Et nos âmes égarées
돌아봐 - 싫어 - 내게 기대 - 싫어, 그렇게 하기 싫어 -
그럼 춤을 춰 La Dacadanse 네 허리를 움직여봐
천천히 내 허리 앞에서 - 거기 그대로 있어
내 뒤에서 좌우로 흔들어 움직여봐
네 손이 내 가슴과 너의 마음이기도 한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La Decadanse
내 사랑 언제나 변함없는 내 사랑 조금만 더 참아 La Decadanse
내 손가락으로 너를 데려갈 거야. 먼 곳으로 저쪽에
희뿌연 물이 갑자기 내 감각을 흐리게해. La Decadanse는 내 정신을 잃게 했어.
아! 너는 나를 미치게 해. 내 사랑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겠니?
난 너를 사랑했었어. 전에는 하지만 희미한 흔적이지.
La Decadanse 더욱 더 우리의 죽음이 우리의 영혼을 맺어준다면
그리고 우리의 육체도 신들이시여 용서하소서 우리의 죄를
La dacadanse 마비된 육체와 방황하는 우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신들이시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La decadanse 마비된 육체와 방황하는 우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Jane Birkin
Jane Birkin은 1946년 생으로 영국 런던에서 군인인 아버지와 배우이자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미모와 재능을 타고 태어났다.
여배우 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배우 수업을 받고 순조로이 배우로 데뷔했던 그녀는
17세에 "Caring a Statue"에서 청각장애자 역할로 연기에 입문하고,
곧 "Passion Flower Hotel"로 뮤지컬에도 데뷔했다.
제임스 본드 007시리즈와 "아웃 어브 아프리카",
"늑대와의 춤을" 등의 영화 음악을 맡았던 John Barry와 19세에 결혼한 후
"The knack"(나크), "Blow Up" (칸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 수상)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John Barry를 만나 딸 케이트를 낳지만 영화 작업 중에 만난 세르쥬 갱스부르와의
만남이 배리와의 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켰고 이후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고 만다.
존 배리와 이혼한 후 프랑스로 건너간 그녀는 영화 "Slogan"을 찍으며
인생의 동반자인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1969년 '69 Lannee erotique, Je t'aime... Moi non plus' 등을 내놓는데
특히 그들이 함께 부른 "Je t'aime moi non plus(난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요)"는
본래 갱스부르가 전 애인이었던 브리짓 바르도를 위해 만들어졌고
이미 그녀의 보컬로 발표된 바 있었지만
제인 버킨의 끊어질 듯 가파롭고 격정적인 목소리로 소화된 이 버전으로
외설 처분과 함께 몇몇 국가에서는 판금 조치로까지 사태가 발전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소동들로 한층 더 인기를 얻게 되었음은 물론,
결국 프랑스와 영국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였으며 미국 싱글 차트에도 69위까지
진출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갱스부르의 작품이 되었다.
이후 La ballade de johnny Jane, La decadanse, Lolita go home등
갱스부르의 롤리타 컴플렉스를 반영하는 듯한 연약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에로틱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사이에서는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태어났고
파트너쉽도 순조로운 듯 하였지만 1980년에 그들 부부도 파경을 맞고 그 후
제인 버킨은
프랑스의 영화 감독 Jacques Dollion과 세번째 결혼을 한다.
그러나 3년 뒤인 1983년 자신의 곡들을 갖고 제인을 다시 찾은 갱스부르의 제의로
갱스부르와 제인은 다시 음악적 재결합을 하고
그렇게 해서 명반 BABY ALONE IN BABYLONE이 탄생했다.
브람스 교향곡 제 3번 3악장을 편곡한 타이틀곡은 영국 태생인 제인을
프랑스 감성을 대표하는 위치에 올려놓았다.
버킨은 이후로도 가수로 그리고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지속해 나갔다.
Jane Birkin의 베스트 모음집인 이 음반에는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꿈같은 나날을
담고 있는 트랙들부터 재결합 작품인 Baby alone in Babylone,
슬럼프의 시작을 알리는 Quoi등 파리의 낭만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제인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의 매력을 십분 감상할 수 있는 앨범이다.

Serge Gainsbourg
1928년 파리에서 태어난 세르쥬 갱스부르는 나이트 클럽 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을 접했다.
아버지와 달리 화가가 되고 싶어했지만 위대한 화가가 되지 못할 바엔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뛰어난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그는
이내 자신의 노래를 직접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1958년에 내놓은 첫 작품 'Du Chant A L'Une'부터 기괴한 소재와 강한 비트,
그리고 재즈가 결합된 음악을 선보이며 소수의 매니아들을 확보했다.
그는 1961년 'L'Etonnant Serge Gainsbourg,
1963년 'Gainsbourg Confidentiel'을 통해 꾸준히 차트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1960년대의 음악상황은 그에게 불리하게만 흘러갔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비틀스와 같은 새로운 영국 팝에 열광했다.
낙담한 그는 한때 다시 그림을 그릴 것도 고려했지만,
다양한 음악을 수용하면서 이 위기를 극복했다.
1964년의 'Gainsbourg Percussions'는 영미의 음악에
아프리카 리듬까지 차용한 음반이었다.
그러나 전통 프랑스 음악 진영에서는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그는 한 좌파 지식인 클럽에서 공연을 하다 야유를 받고 무대를 내려와야만 했다.
충격을 받은 그가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는 이후로 14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가수들, 특히 미녀 배우들에게 히트곡을 써주기로 유명한 그는
수많은 염문설을 뿌렸다.
'Hier ou demain'를 히트시킨 마리안느 페이스풀 (Marianne Faithfull)의 뒤를 이어
브리지뜨 바르도(Brigitte Bardot)가 그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둘은 곧 뜨거운 관계로 발전했고 'Harley Davidson',
'Bonnie and clyde'와 같은 노래를 같이 했다.
영원한 문제작 'Je t'aime...moi non plus'에서 둘은 외설시비에까지 휘말렸다.
그러나 이 노래가 주변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브리짓 바르도는 그와 거리를 두었고, 세르쥬 갱스부르는 다시 한번 실의에 빠졌다.
새로운 미녀들을 만남으로써 절망을 떨쳐낼 것을 다짐한 그는 곧 난봉꾼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던 중인 1963년, 그는 필생의 동반자가 되는 제인 버킨(Jain Birkin)을 만났다.
갱즈부르는 당시 20살에 불과했던 제인 버킨과 함께 새로운 버젼의
'Je t'aime...moi non plus'를 녹음했다.
침대 밑에 녹음기를 두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뜨거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이 노래는 특히 버킨의 신음으로 전 유럽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각 나라에서 판금조치가 잇따랐고 교황청에서는 그들을 파문했다.
그러나 노래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앨범 "Serge Gainsbourg & Jain Birkin"(1969)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마침내 세르쥬 갱스부르는 프랑스 음악계에 결정적인 충격을 안겨주며
슈퍼스타로 올라섰다.
그 생애 최고의 걸작이라는 "Histoire de Melody Nelson"는 1971년에 나왔다.
중년의 남자와 십대 소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이 음반은 애로틱한 분위기와
시적인 가사, 반사회적인 일련의 소재가 혼합된 완벽한 록 오페라였다.
예술적인 완성도에 취한 세르쥬 갱즈부르는 "La Decadanse"라는
야한 자세까지 만들어내며 제인 버킨과 함께 즐거워했다.
그 후로도 도발적인 음악 실험은 계속 됐다.
1972년 공식적으로 제인 버킨과 결혼한 그는 섹스와 갖가지 추찹한 소재들을
이야기하는 "Nu de l'Exterieur"(1972)에서 펑키한 룩을 선보였다.
프랑스인들이 혐오하는 나찌를 끌어들인 "Rock Around the Bunker"(1975)에서는
50년대 로큰롤 분위기를 경쾌하게 그려냈다.
머리가 배추로 변하는 변태적인 젊은 살인자를 소재로 한 두번째 컨셉 앨범
"L'Homme A Tete De Chou"(1976)가 계속 이어졌다.
이 작품들은 프랑스 언어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말의 독측한 리듬감을 실현해냈다.
1979년에는 프랑스 언어로 불가능해 보였던 레게에도 도전했다.
다메이카 현지 음악인들과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낸 "Aux Armes et Caetera"를 통해
레게가 프랑스 어법으로도 가능한 장르임을 경이롭게 증명했다.
그는 신성한 국가 "La Marseillaise"를 레게로 바꿔 놓고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를 다시 하번 들쑤셔 놓았다.
그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고 공연장에서는 벼르고 있던 군인들을 상대로
정상적인 국가를 불러야 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갈채에 화답하면서도
슬쩍 중지를 세우는 행위를 잊지 않음으로써
또 한번 반사회적인 영웅이 됐다.
그러는 동안 제인 버킨은 비정상적으로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던 남편을
점점 견뎌내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1980년 그를 떠났다.
혼자가 된 세르쥬 갱즈부르는 또 한번의 변태적인 소재를 담은 레게 음반
"Mauvaises Nouvelles des Etoiles"(1981)을 내놓았고, 21살의 새 애인을 만났다.
1984년에 근친 상간의 분위기를 풍기는
"Love on the Beat"를 발표하고 딸 샬롯 갱즈부르(Charlotte Gainsbourg)와
함께 한 "Lemon incest"로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는 생방송 TV쇼에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자고 싶다(fuck)는
발언을 함으로써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 "갱즈부르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1987년 마지막 음반인 "You're Under Arrest"를 발표한 후부터
그는 급속히 쇠약해져 갔다.
이미 과도한 흡연과 음주로 인해 여러 번 심장 이상을 일으켰던 그는
결국 1991년 3월 2일 자신의 침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수많은 음악인들이 줄을 지어 조의를 표했다.
현 프랑스 대통령인 자끄 시락(Jacque Chirac)도 자신이 좋아하는
세르쥬 갱즈부르의 노래를 언급하며 위대한 음악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미 사후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대중들을 상상을 뛰어넘은
그의 음악과 인생에 열광한다.
영미의 젊은 음악인들까지도 자신들이 세르쥬 갱즈부르에게 경도되었음을
시인하며 끝없는 존경을 표한다.
세르쥬 갱즈부르는 엇갈리는 찬사와 비난에 관계없이
헌대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거목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그의 또 다른 이름과도 같았던 제인 버킨은
세르쥬 갱즈부르가 다른 가수들에게 주었던 곡들만을 모아
다시 부른 "Versions Jane"을 1996년에 내놓았다.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향수로 가득한 이 음반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그들의 사랑에 마지막 한 줄기 아름다움을 더했다.
제인 버킨을 영화배우로만 아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항상 음악이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 아이콘이었고, 아름다웠으며.....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인 세르쥬 갱스부르와 그녀를 뗄 수 없는 이유는 음악을 들어보면 알 것이
출처 Designer Hailie 해일리

